검찰, 14조 원대 정유사 담합 기소…공정위는 제주 주유소 가격 담합 제재
국제유가 상승과 중동 정세 불안이 국내 기름값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왔지만,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잇따른 수사 결과는 또 다른 원인을 드러냈다. 국내 정유사들의 가격 담합과 지역 주유소의 가격 담합이 잇따라 적발되면서 “국민이 부담한 기름값에 담합 프리미엄이 더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6일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국내 4대 정유사와 일부 임직원을 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이 추산한 직접 담합 규모는 약 14조2천억 원으로, 가격 추종 효과까지 포함하면 경쟁 제한 규모는 약 2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검찰이 수사한 공정거래 사건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트럼프 만세”…전쟁을 호재로 본 내부 대화
검찰이 확보한 사내 메신저에는 충격적인 대화도 담겼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발발 직후 한 정유사 직원들은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올해 2조 원 벌 듯”,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라는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당시 정유사들이 이미 상당량의 원유를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국제유가 상승만으로 공급가격을 급격히 올릴 이유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수사 결과 SK에너지가 가격을 먼저 인상하면 HD현대오일뱅크가 뒤따르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이를 추종하는 방식으로 시장가격이 함께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유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이번 수사에서는 국내 석유 유통구조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정유사들은 다수의 자영 주유소와 ‘전량구매계약’을 체결해 특정 정유사의 제품만 구매하도록 했다. 사실상 다른 정유사의 제품을 들여올 수 없는 구조였다.
정유사가 공급가격을 통보하면 주유소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다른 회사 제품을 취급할 경우 손해배상 청구나 각종 지원 중단 등의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 같은 계약 방식은 이미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을 명령했던 사안이지만, 유사한 거래 관행이 계속 이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에서도 가격 담합
같은 날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주 지역 주유소들의 가격 담합 사실도 공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국주유소협회 제주도지회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회원 주유소에 사실상 판매 기준가격을 정해 카카오톡과 문자 등을 통해 전달했고, 회원사들이 이를 따르도록 했다.
더욱이 제주농협과 서귀포농협 일부 주유소는 다음 날 판매가격을 오피넷 공개 전에 협회에 미리 제공하고 가격 인상과 유지 과정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제주주유소협회와 제주농협, 서귀포농협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20억 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이번 담합이 없었다면 제주지역 기름값은 리터당 최소 10원에서 최대 60원 정도 더 낮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유가만 탓하기 어려운 현실
최근 정부는 국제유가 안정에 맞춰 석유 최고가격을 리터당 150원 인하하며 물가 안정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검찰과 공정위의 조사 결과는 국내 기름값이 국제유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유통구조와 시장 경쟁 환경에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정유사와 주유소 사이의 독점적 거래 구조, 일부 지역의 가격 담합이 동시에 확인되면서 소비자들은 국제유가 하락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름값이 오르면 대부분의 국민은 국제 정세나 환율을 먼저 떠올린다. 실제로 국제유가와 환율은 중요한 변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국내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시장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국제유가가 내려도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늦게 떨어지고, 반대로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더 빠르고 크게 인상될 수 있다.
검찰 수사와 공정위 제재가 단순한 처벌에 그치지 않고, 석유 유통시장의 투명성과 경쟁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찐뉴스 김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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